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코모 카사노바 (문단 편집) === 다재박덕 === 15세에 수도원장, 16세에 법학박사, 그리고 의학, 화학, 수학에 박식했고 특히 18세기 사람으론 드물게 [[통계학]]에 능통해 프랑스 국영 복권의 조직을 위탁받기도 했다. 그 이후 [[시인(문학)|시인]], 비단 제조 공장 운영, 염색 공장 운영, 바이올리니스트, 격투가, 역사가, [[마술사]], [[엔지니어]] 등으로 활동했으며 프리드리히 대왕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를 가동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 오만가지 부문에 대한 저서도 무척 많이 남겨서 후대에 그의 서적을 연구하는 '카사노바 연구회'까지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카사노바라는 이름이 바람둥이나 문란한 난봉꾼, 심하면 [[변강쇠]]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 카사노바가 뛰어난 지성인이자 교양인이었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이 인물의 행적이나 업적을 진지하게 따져본다면 희대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젊어서는 성직에 뜻을 두었다가, 군인의 길을 걸으려고도 했고, 모험가로 평생을 보내며 예술가, 작가, 엔지니어, 사업가, 연금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 대부분의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의 씨앗을 엿볼 수 있었을 뿐,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 했다. 어떤 한 분야에 평생에 걸쳐 매진했다면 역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길 만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만한 성실성이 없었기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 한 인물이다. 일단 그나마 카사노바의 이름이 남은 분야가 작가로서의 카사노바인데, 카사노바가 평생에 걸쳐 남긴 상당히 많은 작품 중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은 딱 하나, 분량은 방대하고 진위는 의심스러운 《자서전》뿐이다. 이게 농담이 아닌데… 그 자서전이란 결국 평생 여자들이랑 놀아난 이야기 모음집. 다른 작품들은 어지간한 카사노바 연구자들도 재미도 교훈도 없다고 깐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탈리아 문학사 연구자들은, 카사노바의 자서전이 가진 높은 문학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카사노바의 문학적 성취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카사노바는 작품 같은 인생을 산 인물이지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아니었다는 이야기. 자기 인생을 그대로 기록한 자서전은 읽기에도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당대의 기록으로서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로서 직접 만들어낸 작품의 수준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창작력은 없는 인물이었다는 것인데, 이래서야 작가로서 높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다. 그 자서전의 내용도 엄밀히 말하면 과장이나 각색이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허풍으로 글 전체의 수준을 떨어트릴 정도는 아니고 있을 법한 수준에서 이야기를 재미 있게 만들기 위한 적절한 윤색 정도라서, 이걸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가 외의 다른 영역에서의 활동은 더 초라하다. 저서는 많지만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발상은 없다.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한 지식인이자 교양인이었지만 독립적인 업적이라 불릴 만한 성취를 이룬 분야는 없는 전형적인 [[딜레탕트]]였던 셈. 유럽의 왕이나 왕족, 교황, 추기경, 볼테르 등의 명사들과도 교류한 교양인이기는 했지만, 당시의 명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일이었고 적당한 사람의 소개를 받아 손님으로 찾아가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암살 이전만 하더라도 딱히 대통령을 유별나게 대중과 차단시키며 까지 경호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희박했고, 이로 인해 19세기 미국사에선 현대적 기준에선 '조금 연줄있는 수준의 일반인'들이 백악관을 막 들락날락했던 경우가 많다.] 카사노바는 저런 명사들과의 대화를 영광으로 여겨 꼼꼼히 자서전에 기록했지만 카사노바와 교류한 명사들은 카사노바를 자신들의 살롱에 머무르는 교양인들 중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았고 딱히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다. 당시 유럽이 살롱을 중심으로 하는 교양인들간의 교류 문화가 절정에 달한 시대였음을 생각하면 카사노바는 그저 살롱의 수많은 흔한 교양인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카사노바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대담을 보더라도 생각보다 내용이 별로 없다. [[상수시 궁전]]의 정원에서 산책 중이던 프리드리히 대왕과 카사노바가 만났다. 카사노바가 인사를 꾸벅 했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인사를 받고 말을 걸어주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당시 유럽 예법상 신분이 더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은 결례였다.] >'''{{{#696969 프리드리히 대왕}}}''': 이 궁전 멋지지 않소?[* [[상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2세 자신이 설계에 개입해 짓게 한 것이었으므로 결국 자기 자랑.] [[베르사유 궁전]]에 비교해도 안 밀릴 거요.[* 참고로 수능 시리즈에 나오기도 하는 [[상수시 궁전]]은 지극히 객관적으로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할 수 없는 검소한 궁전이다. [[로코코]] 풍으로 산뜻하게 채색한 게 예쁘긴 한데 단층건물에 큼직한 계단도 없고 종탑 같은 것도 없다. 지나친 화려함보다 검소함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상수시 궁전을 더 높게 평가할 수도 있으나 단순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C71585 카사노바}}}''': 멋진 궁전이군요. 근데 분수가 없어서 완성됐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696969 프리드리히 대왕}}}''': 아, 나도 분수는 짓고 싶었는데 물 끌어들이기가 어렵더군. 베르사유에는 분수가 많소? >'''{{{#C71585 카사노바}}}''': 분수가 많아서 멋지죠. 폐하도 베르사유를 이기고 싶으면 분수를 멋있는 걸로 지어야 합니다.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 거 같은 걸로. >'''{{{#696969 프리드리히 대왕}}}''': 오 자네 수력학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구려? >'''{{{#C71585 카사노바}}}''': 그런 건 아니고... > >(잠시 카사노바가 기록하지 않은 잡담) > >'''{{{#C71585 카사노바}}}''': 그런데 프로이센에서도 복권 사업해보는 거 어떠신지요? 돈 모으는 데 좋아요.[* 카사노바는 프랑스 국영 복권 사업에 참여해서 돈을 좀 만진 적이 있다. 프로이센에서도 한 밑천 잡아보고 싶었던 걸로 추정.] >'''{{{#696969 프리드리히 대왕}}}''': 그거 하다가 내가 손해보면 어떡하려고? >'''{{{#C71585 카사노바}}}''': 계산만 잘 하면 괜찮아요. 뭐 100번에 한 번쯤 밑질 수도 있긴 한데 그건 99번 이익본 걸로 충분히 메꾸고 이익 남습니다 ㅋㅋ >'''{{{#696969 프리드리히 대왕}}}''':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왕이 나서서 사기치는 거 같아서 하고 싶지 않구려. > >(또 잠시 후) > >'''{{{#696969 프리드리히 대왕}}}''': 근데 가만 보니까 자네 꽤 잘 생겼구려? 특히 코가 꽤 멋진데. >'''{{{#C71585 카사노바}}}''': 감사합니다. 카사노바가 자서전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대충 이 정도인데, 이 대담에서 그의 한계를 볼 수 있다. 물을 끌어들이지 못해 분수를 못 지었다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이야기[* 사실 이 대화에서 등장한 [[베르사유 궁전]]도 원래 물이 없는 곳에 지어서 수자원 사용이 골치였다. 프랑스인들은 이 문제를 센 강에 14개의 거대 수차를 설치→강가의 600m 정도 떨어진 언덕 위로 퍼올린 후→베르사유까지 8km 거리를 [[수도교]]를 통해 흘려보내는 식으로 해결했다. 즉 베르사유의 분수대는 당시로서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어마어마한 기술력+재력 자랑'''이었던 것이다.]에 카사노바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 같은 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며 '제대로 했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아는 척을 했고, 이를 들은 프리드리히가 구미가 당겼는지 '수력학에 조예가 있느냐'고 흥미로워했다. 여기서 만약 카사노바가 화려한 언변만큼 실력이 있었거나 확실한 전문적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이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기량 또는 인맥을 피력해 왕에게 환심을 사며 인정받아 적당한 관직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근세 유럽의 절대왕정기에, 지식인들이 이런 식으로 기회를 얻어 출세하는 일은 매우 흔했다. 하지만 카사노바에게는 아이디어를 내고 왕의 구미를 당길 정도의 말빨은 있지만 그걸 실행할 능력이나 인적 네트워크가 없다보니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고 어물어물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상대방이 솔깃하게 할 만한 말빨은 가진 사람이었지만 행동력은 아니올시다라는, 한마디로 '허당'이었다는 것. 그래도 프리드리히 대왕이 카사노바에게 관직을 주긴 했다. 다만 역시 대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인 만큼 사람 보는 눈이 있었는지 사관학교 교관이라는 미관말직만 주었다. 카사노바는 어쨌건 이것저것 아는 건 많은 사람이었으니 생도들의 교양강사로서는 나쁘지 않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문제는 보수가 짜고 대우가 나쁘다는 이유로 카사노바가 잠시 일하다가 때려치고 나가버렸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는 큰 실수였는데 이 당시 프로이센은 병영국가에 가까웠고 카사노바가 가르칠 학생들 역시 국내 유수의 귀족 자제들이었음을 생각해보면 그때 카사노바가 교관일을 성실하게 하기만 했으면 이를 기반으로 출세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특히 성실하게 선생 노릇을 해서 제자들의 존경만 받을 수 있었다면 학부모들의 존경도 함께 얻을 수 있었을 테고, 유수의 귀족인 학부모들과 고급 장교로 출세할 제자들의 지지는 카사노바의 출세에 크나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카사노바의 재능이라면 재능인 풍부한 교양 및 임기응변과 더불어 수학과 통계에 대한 재능을 이용한다면 비록 실제 기술은 없어도 천천히 관록을 붙여나가서 꽤 괜찮은 관리직이나 행정직을 맡기에는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사노바에게는 당장의 불편함을 꾹 참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이 될 만한 성실성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복을 걷어차고 말았다.] 이 외에 러시아에서 [[예카테리나 2세]]와의 대담도 자서전에 기록했지만 이건 더 짧다. 카사노바가 왜 러시아는 더 과학적인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쓰냐고 묻자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정교]] 신도들에게 자기 생일의 성인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므로 만약 그레고리력을 도입한다면 적지 않은 국민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 하면서 끝. 그런데 여기서 대단했던 점은, 어지간한 사람은 평생 한 번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도 제대로 말 한 마디 나누기도 힘든 왕과의 대담 기회를 두 번이나 가졌던 것이다. 처음에 카사노바에게서 "왜 러시아는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예카테리나 2세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못 하고 궁정학자의 자문을 받아 며칠 후 다시 카사노바를 접견해 대답을 해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왕이 흥미 있어할 만한 화제를 정확히 고른 카사노바의 말솜씨는 분명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왕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할 만한 실력은 없었으니 기회를 아무리 많이 가져도 소용이 없었다. 이와 같은 예로 볼 때 카사노바는 각국의 왕이나 최고의 명사들 앞에 나서도 당당하게 대화할 수 있는 당대의 국제적 교양인 중 하나였지만 그런 교양인들 사이에서 특별히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했던 것 역시 학문의 분야가 세분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와 별개로 그가 가진 매력은 확실히 있었고, 그 매력을 기회로 바꿀만한 말빨 또한 확실히 비범했다. 하지만 딱 그것 뿐이었고 저런 매력과 말빨로 만들어낸 기회를 살릴 만한 실질적 기술이나 정상적 인맥은 하나도 없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 실력이나 인간관계, 신용을 가꿀 여건과 기본 소양도 충분하였으나 평생 쾌락과 겉멋만 추구하느라 가능성에 멈추고 말았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대왕과의 대화를 보면 프랑스 문화 애호가로도 유명했던 프리드리히가 당대 유럽에서 왕의 위엄을 과시하는 호화로운 궁전의 대명사였던 [[베르사유 궁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외지에서 온(프랑스에도 다녀온) 카사노바에게 "내가 짓게 한 이 [[상수시 궁전]]이 어떠냐? 이정도면 베르사유에도 밀리지 않을걸!" 이라고 자랑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랑을 들은 카사노바는 일단 "정말 멋진 궁전입니다" 라고 한번 추켜세워준 뒤 "하지만 분수가 없는 것이 옥의 티군요! 아쉽습니다" 라고 왕이 아쉬워할만한 부분을 찔러들어갔고, 프리드리히는 이 미끼를 제대로 물고 "나도 분수는 꼭 짓고 싶었는데! 하지만 물을 끌어들이기 힘들어서 포기했지" 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여기서 살짝 거만하게 "그건 일을 제대로 못해서 실패한거죠. 제대로만 했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라고 자신을 과시함으로써 프리드리히에게 "자네 수력학을 잘 아는 모양이군?" 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면, 사실상 공략 성공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러저러해서 요래조래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라고 적절히 설명을 하거나 확실한 전문가를 소개시켜주기만 하면 관직과 업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갖추어졌지만, 정작 그 문제의 '수력학'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연결해줄 사람도 없으니 프리드리히를 다 함락시켜놓고도 깃발을 꽂지 못하고 어물어물 말을 돌려 물러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매력과 언변은 대왕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그 프리드리히마저도 자기 페이스에 끌어들여 요리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실력이나 제대로 된 인맥이 없으니 아무리 상대를 녹여놔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프리드리히에게 얻은 호감을 이용하여 자신이 잘 아는 일(복권이나 도박과 같은 사행산업)을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하기는 했지만, 프리드리히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정작 그에게 필요한 일은 못해준다면서 그 대신 자기에게 유리한 다른 일을 해 보자고 홍보하는 이런 사기꾼 같은 자의 설득에 넘어갈 리는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